처음 ‘디지털 노마드’라는 단어에 이끌렸을 때, 내가 기대한 건 자유였다.
늘 하던 일은 그대로 유지하면서, 새로운 도시에서의 아침을 맞고, 거리의 향기와 낯선 언어를 익히는 삶.
하지만 공항에 도착하던 그 순간부터 느껴진 묘한 떨림과, 두려움, 그리고 설렘은 책이나 영상에서는 알 수 없는 것이었다.
그 첫 도시가 태국 치앙마이였다.
지금도 생각하면, 잘 선택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그곳에서의 한 달은 나에게 많은 걸 가르쳐줬다.
이 글에서는 그 첫 도시에서의 적응기를 통해 디지털 노마드를 꿈꾸는 누군가에게 조금은 가까운 현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다.
생각보다 외롭지 않았던 도시
치앙마이에 도착한 첫 날, 나는 나 자신이 굉장히 외롭게 느껴질 것이라 예상했다.
친구도, 가족도, 익숙한 말도 없는 이곳에서 나는 그저 작은 여행자에 불과할 거라고.
하지만 놀랍게도, 생각보다 외롭지 않았다.
치앙마이는 전 세계의 노마드들이 모여드는 도시답게 카페에서도, 코워킹스페이스에서도, 로컬 행사에서도 자연스럽게 대화를 시작할 기회가 많았다. 특히 ‘Yellow Coworking’이라는 공간에서 매주 열리는 네트워킹 모임에서 처음 만난 독일인 프리랜서가 이런 말을 해줬다.
"우리는 모두 혼자지만, 그 덕에 쉽게 연결돼."
이 말이 그날 이후 나의 태도를 바꿨다.
혼자 왔지만, 혼자 있으려 하지 않았고 어색함보다 호기심을 앞세워 대화를 시작했더니 의외로 진심 어린 연결들이 생겼다.
치앙마이는 나에게 외로움이 아니라, 연결을 배울 수 있는 도시였다.
계획보다 리듬: 나만의 하루가 만들어진 시간
처음에는 구글 캘린더를 빽빽하게 채웠다. 오전엔 일, 오후엔 관광, 저녁엔 운동…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 그렇게는 도저히 못 버티겠더라.
치앙마이의 더운 오후, 에어컨이 터지는 카페에서 일을 하다가 슬쩍 밖을 보며 햇살을 느끼고, 예정에 없던 산책을 나가는 날들. 로컬 마켓에서 신선한 망고를 사서 숙소에서 간단히 식사하며 일과 쉼 사이에 스스로 조율하는 리듬이 생겨났다.
이곳에서 배운 가장 큰 교훈은 “일이 중심이 아니라, 삶이 중심이어야 한다”는 것.
나는 일을 하기 위해 떠난 게 아니라 일을 하며 살아가는 방식을 새롭게 배우기 위해 떠난 거니까.
이 도시는 내게 ‘느슨하지만 안정적인 루틴’을 만들어주었고, 그 덕분에 지속 가능한 노마드의 하루를 발견하게 되었다.
도시를 이해한다는 것: 현지에 스며드는 법
여행자였다면 그냥 툭 하고 지나쳤을 골목.
디지털 노마드가 되고 나니 그 골목이 내 출근길이 되었고, 자주 가는 노점 아주머니와는 매일 인사를 주고받게 되었다.
현지에서의 적응은 단지 언어나 문화에 익숙해지는 것만은 아니었다.
삶의 속도를 조절하고, 지역의 리듬을 존중하는 태도를 배우는 일이기도 했다.
치앙마이에서는 ‘타이 타임’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일이 조금 느리게 흘러간다는 뜻이다.
택시가 약속 시간보다 10분 늦는 건 당연하고, 식당에서 주문한 음식이 30분 후에 나오는 것도 익숙해진다.
초반엔 이런 일에 답답해하며 한국식 효율성을 들이밀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이게 이 도시의 방식이구나’ 하고 받아들이게 되었다.
도시에 적응한다는 건 단지 환경에 맞추는 게 아니라 나의 관점을 내려놓고, 이곳의 방식을 존중하는 것이었다.
치앙마이는 나에게 ‘디지털 노마드’라는 삶의 출발점이자 삶을 새롭게 구성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준 도시였다.
그곳에서 배운 건 거창한 철학이 아니라
“혼자서도 괜찮다”는 감각과 “느리게 살아도 된다”는 여유, 그리고 “내가 만든 리듬대로 산다”는 자신감이었다.
또 하나의 새로운 도시가 나를 기다리고 있다.
나는 첫 도시에서 배운 모든 감각들을 가슴에 담고,
다시 한 번, 나만의 방식으로 삶을 만들어갈 준비를 한다.